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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영  일  기

출근 전 연남동

by 나토커 2021. 12. 14.

지난주부터 나 혼자만의 약속이 있었는데
바로 출근 전 안과 가기, 필름 인화하기.
약속이라는 게 지키라고 있는 건데 난 그걸 못하고 있다.
친구들과 약속도 잘 못 지키고, SJ 작가님과 점심 약속 시간도 잘 못 지키는데..
내 약속은 지키면 나만 좋고, 안 지키면 나만 안 좋은 거니 잘 안 지키게 된다 ㅎㅎ

오늘도 좀만 더 부지런했다면 안과도 갈 수 있었지만... 나와의 약속이니 일단 자체적으로 취소하고
필름 현상 약속부터 지켰다. 두 개중 하나라도 지켰으니 일단 반은 성공한거다.

필름 현상은 항상 나를 떨리게 한다. 필름 한 롤에서 36장의 완벽한 사진이 나올지, 어떤 실패작이 나올지에 대한 떨림이랄까.. 필름카메라는.. 실패작이라도 나오면 땡큐다. 지난번 필름을 반대로 껴놓아서 두 롤을 다 망해서 가슴 아픈 기억..
그 사진들은.. 아직도 태어나지 못했고, 영원히 태어나지 못할 사진들이다.... R.I.P

이번 떨림은 아주 오래전에 묵혀 놓은 미놀타 카메라 필름을 현상하는 거라 어떤 게 나올지도 떨렸고 ㅎㅎ

한 필름당 36장의 사진이 나오는데 36장을 다 찍기 전엔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다.
궁금하다고 해서 카메라를 열면 큰일 난다. 빛이 들어가는 순간 필름은.. 제 수명을 다한 것이다.
36장의 시간을 지나야 현상을 할 수 있는데
그래서 36장의 사진들 속엔 여러 계절이 존재하고, 다양한 내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2월의 강릉 촬영, 4월의 강릉 여행, 5월의 제주도 여행, 11월의 경복궁, 12월의 경이 결혼식 등등.
분명 36장의 사진이 다 잘 나올 것도 아니고, 구도도 엉망이고 사진이 흔들릴지라도
바로 내가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확인하고, 지울 수 있는 휴대폰 카메라보다 필름 카메라가 더 매력적인 이유는
기다리는 맛과 흔들려도 구도가 엉망이어도 그게 멋인 매력 아닐까 싶다.

색감도 좋고 다루기도 쉽지요 리코리코

필름 두 개 맡기고, 상암동까지 또 가야하는데 난 길을 몰라 지도 보면서 가야하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했다.
이러다가 상암동 가기 전에 도로에서 미아 되겠구나..
네비게이션 없던 시절, 아빠들이 지도책보면서 차를 운전했던 것처럼 표지판에 '상암동', '월드컵로'만 보고 가야겠구나.. 생각하며 .. 내가 사는 동네에선 그렇게 해도 괜찮다. 30년을 살았는데 눈감고 집 정도야 갈 수 있지..(과연..)
하지만 서울은 안된다. 까딱 잘못하다간 내가 강원도에 있을수도 있기 때문 (과장)

또 휴대폰 충전을 미리미리 안한 어제의 나를 탓하며 카페 들어가 충전 맡기고, 시간을 살짝.. 아주 살짝 보냈다.
연남동도 좋은데 날을 잘못 잡은 탓인건지.. 또 내 가게운이 안좋은건지
지난번에 지나가면서 가보고 싶다 했던 곳들이 모두 문을 닫아서 얼레벌레 일단 힙해보이는 카페 찾아서 갔다. (힙생힙사)

어느정도 휴대폰이 충전 됐겠다 싶었을 때 카페를 나왔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아득했다.
출근하려고 주차장까지 다시 가야하는데.. 연남노상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한 건 알겠는데
그 곳 어디에 내가 주차를 했는지 기억을 못해서 더듬 더듬.. '아 이러다가 차 못찾겠구나' 싶을 때 주차장 구역이 끝났다. 그래..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도 내가 어디에 주차했는지 못 찾는 마당에 길 위에 주차하고, 아무런 기록 없이 내 갈 길 간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구나.. 생각하며.. 오른쪽 줄.. 왼쪽 줄 번갈아 가면서 차근차근 찾아보니 내 차가 보였다.

4월 강릉 바다  / 현민언니가 찍어주신 빛 받은 현영 (11월 경복궁)


이번에 인화한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두 장.
그동안 다루기 귀찮아서 미놀타 카메라를 좀 멀리 했는데 미놀타 색감 리코에 뒤지지 않는다.
사실은 필름카메라의 결과물을 결정하는 건 카메라도 찍는 사람도 아닌 자연광이라고 생각한다.
(경이 결혼식 때 사진작가 분이 필카로 우리 찍어줬는데 구도가....엉..망..
아! 물론 구도가 엉망이어도 필카만의 멋이 있지만..ㅎㅎㅎㅎㅎㅎㅎㅎ)

지난 나길동 시절에 필름 카메라 들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을 땐
필름 한롤, 두 롤에 여수, 하동, 거제, 제주, 춘천 등 다양한 지역들이 있었다.
내년엔 다른 나라들이 있으려나 ㅎㅎ 스페인도 좋고 포르투갈도 좋고 .... ㅎㅎ 여행가고싶다.

그리고 안과.. 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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