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커 2022. 7. 13. 02:53

눈이 안좋은 나는 .. 안경이나 렌즈 없이
일상생활 불가다. 집에서 누워만 있을 땐
렌즈도 안경도 싫어서 그냥 눈 위에 아무것도 얹지 않고 누워있을 때도 있는데
그때 내 시야는 마르지 않은 수채화에
붓으로 물방울을 한방울 툭 툭 떨어뜨린 번짐이 된다. 말 그대로 생활하지 않을때만 안경 없는 삶이 가능하다.

이 상태로 일상생활을 시작한다면 엄마가 주신 밥에 눈이랑 코 박고 먹어야한다.. 그럼 난 귀찮아서 반찬 말고 밥만 퍼먹겠지.. (일단 그 전에 안경을 분명 찾을거다.) 그 다음 먼저 내 칫솔이 뭔지 코박고 찾아봐야하고, 신발에 코 박고 신어야하고, 엘레베이터 층수도 입에 버튼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해야한다. 그리고 신호등이 파란불인지 빨간불인지 분간도 안되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냥 침대 위에 누워있을 땐 흐리멍텅한 시야도 나쁘진 않다. 사진을 찍을 때도 약간 번지거나 흔들렸을 때 더 잘나오는 것 처럼. 굳이 모든 걸 선명하게 봐야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무 생각없이 누워있을 때
앞이 번져서 잘 안보이는 흐리멍텅한
시야를 즐기는 것처럼 나도 흐리멍텅한 상황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사실 애매한 상황, 애매한 관계들이
제일 짜릿한 법이니까.

여행갈 때 애~매하게
자세한 계획을 짜지 않고 어디 갈지 큰 틀만 잡는 것.
그러다 그 가게가 문 닫았을 경우
급하게 찾아서 간 곳이 더 좋은 경우도 있고,
급하게 찾아서 갈 때 재밌는 상황이 생긴다
(물론 아닌경우도 있지만)

이제는 흐릿해진 기억이지만
누군가와 둘도 없는 사이가 되기 직전이
제일 몽글몽글하다. 그리고 그때까진
나현영이 0순위인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이후에도 0순위는 나현영이어야함.)

근데 자꾸 흐리멍텅한 게 싫어진다.
정해져있지않은 퇴근시간과
약속을 정한 것도 아니고 안정한 것도 아닐때.
그리고 애매한 사이들.

이 직업을 가지고 불규칙적인 상황들이
몰려올 때, 예전의 나는 원래 무계획적인게 좋은 사람이니까 라며 나를 위안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의 취향이 분명해지고
그만큼 호불호가 강해지는 만큼
불평불만이 많아지고 궁시렁댄다.
아주 고약해지는 것이다.

친구들이 약속을 잡고, 내가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일 때 나는 항상 “깍두기”라며
갈수도 있고 못갈 수도 있는데 못갈 확률이 높다고 말을 했다. 그때마다 바쁜 나현영.. 멋있었는데 ..
일에 취한 나현영 멋있었는데 지금은 ..
굳이 솔직하게 취할만큼 일이 재미가 없다.

드라마도 중반부.. 약 6-7회 되면 작가 욕하고 싶을 만큼 재미가 없어지는데 나라고 일이 매 회 재밌을 수는 없잖아요. 지금 내 손은 느려졌고, 눈빛은 분명 흐리멍텅해졌다.

그냥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내가 말실수를 하더라도
그 모습이 나의 100%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의 원래 모습을 온전히 아는 누군가와 편하게 눈치없이 대화하고싶고.. 하루를 보내고싶다.
온전한 나의 모습이 완전(完全)한 사람의 모습은 아니지만 완전(婉轉)한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싶다.

흐릿하고 애매한 상황과 관계들 속에서
분명하고 뚜렷한 상황과 관계들이 그립네 정말!